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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및 칼럼


2014.02.11 머니투데이 2014년 1월 29일자, 이서경 병원장님 인터뷰 수록

로젠요양병원
2018-05-19

'불신의 벽'에 좌초된 삼성의 '실험'

총장추천제 등 입사제도 개편 전면 보류, '대학 서열화' 등 오해 극복 못해

머니투데이 산업1부, 정리=오동희 기자




지난해 10월 서울 대치동 단대부고에서 삼성 직무적성검사(SSAT)를 마친 수험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다.

당시 5500명 모집에 지원자가 10만명을 넘어 20대1의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진=뉴스1



"기업들이 누구보다 빨리 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기업이 하는 행위의) 의도 자체를 다 나쁘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국내 기업을 대표하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연초 신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한국 사회가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나갈 테니 시간을 두고 조금만 지켜봐달라는 바람이다.

지나치게 과열된 취업시장을 진정시키면서 여러 형태의 입사 진로를 열어놓기 위해 삼성그룹이 추진한 새 입사제도가 발표 13일 만인 28일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전면 보류됐다.

◇삼성'채용 개편' 좌초 왜= 이날 오전 6시 30분 삼성전자 서초사옥. 삼성 미래전략실 수뇌부들이 모인 42층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지난 15일 발표한 삼성의 입사제도 개편안에 대해 '대학 서열화'와 '지역차별'이라는 오해가 일파만파로 퍼진 때문이다. 삼성 수뇌부는 왜곡되고 과열된 입사 시험 시장을 바로 잡아보겠다던 애초 취지가 퇴색돼 새 제도를 올바로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오전 9시께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이 그룹 기자실로 와 '논란에 대한 사과'와 함께 지난 15일 발표한 개편안 3가지(총장추천제, 서류전형, 찾아가는 열린채용)를 전면 유보키로 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시험 성적이 아닌 개개인의 재능으로도 서류전형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한 대학총장추천제가 마치 '삼성 입사' 티켓으로 오해된다든지, 총장추천 인원수가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억측을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올해 신입사원 채용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아쉽다"vs "다행이다"= "당분간 기업들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채용제도를 도입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삼성의 이날 결정을 듣고 국내 대기업 A사의 인사 담당 임원이 한 말이다. 그는 "우리 회사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마다 인사팀이 총동원돼 며칠 동안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업무가 과도하다"며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인적성검사 기회를 주는 현행 제도는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이 서류 전형을 부활한 이유를 십분 공감한다는 얘기다.

B 대기업 관계자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삼성이) 제도를 바꾸고자 한 것으로 안다"며 "기업의 채용제도 변경에 변수가 너무 많아 어떤 기업이든 채용제도를 바꿀 때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사태를 지켜본 상당수 기업들은 당분간 채용제도를 바꾸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대학총장 추천제도가 오해를 산 것은 과거 추천서 제도의 악몽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C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업들이 특정대학에만 추천서를 보내면서 사실상 취업기회가 제한됐다"며 "이 폐단을 막기 위해 서류전형을 최소화하고 인적성 검사 등을 도입했는데 대학총장 추천제도가 과거 추천서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어 공감대를 못 얻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사담당자들은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채용을 늘리는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채용 자율성 역시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가에선 반응이 엇갈렸다. "염려됐던 일이 현실화했다. 유보 결정을 한 것은 다행이다"라는 시각과 함께 "바람직한 방안을 도출해 삼성과 대학 발전에 도움되길 희망한다"는 기대도 나왔다.

◇상호 신뢰 높여야 = 삼성이 애초 입사제도를 개편키로 한 것은 과열과 비효율을 없애고, 성적만이 아니라 다른 재능을 갖춘 인재도 학교의 도움을 받아 뽑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총장 추천제를 도입한 것은 시험 성적만 좋은 학생이 아니라 성적은 좀 부족하더라도 어려운 환경에서 열정을 갖고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제자들을 선생님들이 적극 추천해 달라는 뜻이다.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해는 해소되지 않았다. 대학별 추천인원수를 놓고 지역별·성별 차별이라는 선정적 주장은 무성했지만 해당 대학의 공대 졸업생 비율 확인 등 '실증'은 뒷전으로 밀렸다.

민간 기업인 삼성의 채용제도 개선 노력이 온갖 오해와 억측 속에 '실험'에 그친 과정은 2014년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학생을 지도하지 않고, 학생의 강점과 잠재력을 접할 수 없는 총장이 어떻게 추천한단 말인가. 외형적 실적에 의한 추천은 추천제의 진가를 놓쳐버린다"라고 말할 정도다. 대학에서 조차 총장추천제로는 교수가 자신의 제자 중 꼭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추천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서경 로젠요양병원장은 "삼성의 위상이 커지자 삼성을 사적영역이 아닌 공적영역으로 대입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해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삼성을 별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만큼 삼성과 사회가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